세계 문제 해결을 위한 필리핀 정부의 노력
여러 정권동안 보인 필리핀의 외교관계
필리핀과 멕시코
필리핀은 레가스피 정권인 1574년부터 1821년당시 이미 멕시코의 비세로이 로얄티에 귀속되어 있었다. 필리핀은 스페인 왕 이 파송한 멕시코의 비세로이에 의해 통치되었다. 멕시코는 지배당시 필리핀인들의 정신적인 면까지도 함께 컨트롤 하겠다는 계획을 세웠으며 25만페소를 해마다 지원받아 왔다.
필리핀에서 통용되는 종교, 경제상술, 언어, 역사책들 모두가 멕시코에서 인쇄되어 필리핀으로 보내졌다. 필리핀의 스페인 점령기간당시 필리핀인들은 아카풀코와 전면적인 사업 및 무역활동을 해왔다. 해마다 마닐라에서 범선무역을 통해 출발한 물건들이 아카풀코를 통해 타국의 생산품과 함께 거래되었다.
필리핀과 스페인
스페인인들이 필리핀에 처음 도착할 당시의 목적은 기독교 복음전파였다. 그러나 이들이 새로운 경제활동을 통해 필리피노에게 새로운 삶으로의 변천을 가져왔다는데 부인할 사람은 없을 것이다. 필리핀에 제일 처음 도착한 스페인인들은 도착당시에 커피, 옥수수, 카카오, 마구아이, 땅콩, 치코, 빠빠야, 호두와 같은 새로운 식물을 들여왔다.
그 뿐 아니라 맥시코와 중국에서 염소, 말, 수탉, 물소, 닭, 오리, 양, 새들과 같은 새로운 가축들도 함께 데려왔다. 이로인해 필리핀의 농업은 더욱 풍족해지고 돼지사육, 양계장 운영, 유제품 제조, 비누제작, 초제작, 콘크리트 주택건설, 다리건설, 도로건설, 와인제조, 책 인쇄술등 수많은 새로운 산업과 일자리가 창출되었다.
스페인 지배당시 필리핀 산업사회에서 설탕, 아바카, 담배는 주요상품으로 중요성을 더해가기 시작했으며 더 나아가 필리피노의 생활에 큰 비중을 차지하는 주산업으로 자리잡아가기 시작했다.
필리핀과 미국
미국인들은 그들의 식민지배당시 필리피노들의 토지를 되찾아주는 정책을 펼쳤다. 이들은 민다나오지역의 토지 24헥타르를 소유할 수 있도록 필리피노들에게 허가하는 법안을 통과시켰을 뿐 아니라 루손지역을 중심으로 모여있는 인구를 분산시키기 위한 여러 정책을 펼쳐 약속의 땅이라 불리우는 비옥한 토지가 널려있는 민다나오지역으로의 이주를 적극 장려했다.
토지관리 및 농업국은 농부들에게 새로운 농업기술을 가르쳤으며 많은 도로와 다리들이 건설되었다. 미국인들은 또한 필리핀에 근대화된 통신수단인 전화, 라디오, 무전기, 전보등을 도입한 이들이기도 하다. 미국이 필리핀에 했던 정책들 중 가장 큰 호응을 받았던 것은 무었보다 보건과 위생문제였다. 미국정부는 콜레라, 문등병등의 질병을 예방하는 방법 및 근절법, 치료법을 도입시켜 많은 이들을 치료했을 뿐 아니라 이 질병의 공포에서 해방시켰다.
미국인들의 필리핀 도착이후 필리핀의 각 병원들은 최신설비를 갖추게 되었을 뿐 아니라 새로운 의료기기를 도입한 신 개념의 의술을 펼쳤으며 서비스 또한 향상되었다. 미국인들은 또한 당시까지도 하나로 통합되어 있던 교회와 정부를 분리하는데 성공했다.
국내외 기관과 필리핀의 멤버쉽
강대국이건 약소국이건 세계 모든 국가들은 국제적인 조직을 형성해 함께 공존해 나가고 있다. 이들은 각 국가의 이익추구를 위해 조직을 구성했으며 공통의 적에 더욱 효과적으로 대처하기 위한 방위목적도 포함되어 있다.
국제조직에 속해있는 각국은 한 국가가 외국의 침략에 의해 어려움을 겪거나 난관에 봉착했을 때 이를 해결하기 위해 회원국들로부터 무기지원 및 병력까지도 함께 지원받을 수 있는 혜택을 누리기도 한다. 과거 냉전시대가 종결되어 서독과 동독이 하나로 통일되고 러시아를 중심으로 연합해 있던 소련제국이 각개 독립국으로 분열되기 시작한 이래로 세계대전발발에 대한 두려움은 많이 가라않았다.
그러나 강한 국제조직인 UN과 NATO가 형성되 세계평화수호 및 약소국의 안보강화를 위해 본격적인 활동을 개시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