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리핀이 미국으로부터 독립을 얻은 이후 세계 여러 나라로부터 진정한 독립국가로 인정을 받게 되었다. 필리핀의 독립이 아시아와 UN에서 인정받은 이후 외국정부와의 외교와 무역을 시작했다. 외국 침략자들이 필리핀을 지배하기 이전부터 필리핀은 중국, 아랍, 인도, 일본, 멕시코 등과 무역과 상업활동을 해 왔다. 현재 필리핀의 외교관계는 전 세계를 무대로 크게 확대되어 아시아 국가들 사이에서 경제, 정치적으로 안정된 민주주의가 정착한 나라라는 특성과 함께 주요 활동국가로 인식되고 있다.
필리핀의 외교정책
외국과 긴밀한 유대관계를 형성 및 지속시켜 나가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 세계의 평화와 안정은 각국이 서로 상대를 이해해 줄때 가능한 것이다. 이를 위해 필리핀은 아래 몇가지 사항에 의거한 외교정책을 펼치고 있다. 1. 국내 전쟁 발발 반대 2. 국제법 존중 및 필리핀 내에서도 이 법을 병행해 고려. 3. 평화, 자유, 안정을 목적으로 외국 정부들과 정치적으로 협력관계 및 유대관계를 형성해 나간다. 선진국들은 약소국들을 무단침략하지는 않기 때문에 필리핀과 후진국들은 침략의 위협에서 비교적 안전하다. 그러나 외국의 침략에 스스로 방어 할 능력은 기본적으로 갖추어야 한다는 것은 당연한 사실이다. 지난 1990년 8월 이라크가 약소국인 쿠웨이트를 침공한 사건을 살펴보면 수시간만에 별다른 군사력을 갖추고 예비를 하지 못한 쿠웨이트가 이라크에게 정복당했다는 것을 본다면 기본 국력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알수있다.
세계 문제 해결을 위한 필리핀 정부의 노력
타국과의 관계유지를 위한 필리핀의 노력은 세계 평화, 환경보존, 국제경제 연계성 형성 등 여러 방면에서 드러난다. 1991년 3월 걸프전이 발생했을 당시 미국, 영국, 프랑스, 이집트, 이스라엘, 일본 연합군이 사담 후세인이 이끄는 이라크 군대와 전투를 벌였다. 이 당시 필리핀은 사우디 아라비아로 200명의 의사들을 파견해 부상을 당한 군인들과 시민들을 보살폈을 뿐 아니라 전투병력을 함께 파견했다.
일본과 이태리 정부는 전쟁 자금을 보내었으며 방글라데시는 군대를 파견했다. 미국, 프랑스, 영국과 같은 강대국들은 군사작전, 병력을 파견 및 수십억의 달러에 달하는 무기와 전투장비, 파견 군인들의 식량을 지원했다. 1992년, 필리핀 정부는 캄보디아로 천여명의 경찰들을 파견해 당시 캄보디아 내에서 활동했던 Khmer Rouge 게릴라로 인해 발생한 테러문제 해결을 적극 도왔다.
필리핀 정부는 그 외에도 각국에 대사, 정부요원등을 파견 또는 직접 대통령이 방문해 양국간의 경제 및 금융 협약 등 관계를 돈독히 유지해 나가고 있다. 이같은 타국과의 외교적 협력관계는 경제, 사회, 문화, 정치, 종교적인 분야로 확장되기도 한다. 필리핀은 계속적으로 자연재해 등으로 인해 황폐화 된 약소국들에게 꾸준히 지원을 해왔다. 아래 내용은 방글라데시에 심각한 피해를 입힌 열대태풍 강타사건 당시의 신문기사이다.
인명피해 급증 코리 아키노 필리핀 대통령 방글라데시에 의약품 등 지원
아키노 대통령은 100,000여명 이상의 목숨을 앗아간 방글라데시의 태풍강타사건에 유감을 표하며 의약품 등을 지원하도록 필리핀 보건부에 명령했다. 방글라데시의 수도 다카에서 보낸 보고에 따르면 화요일의 8시간에 걸친 태풍으로 인해 발생한 인명피해가 300,000여명 이상으로 증가할 수도 있다고 예상했다.
생존자들은 질병, 굶주림, 독뱀 등으로 인해 고통을 겪고있다. 토요일은 방글라데시 시민들 전체가 이번 사건으로 인해 발생한 많은 사망자, 일터를 잃어버린 시민들등을 애도하며 국내 경제발전을 위해 각오를 새롭게 다지는 날로 정했다. 다카에서 공식집계된 사망자수는 토요일을 기해 103,860명으로 발표되었으나 방글라데시 관찰자들의 말에따르면 사망자 수가 약 150,000에 달할 것이라고 나타났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