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외원정, 사설도박장, 인터넷 도박 등 도박의 폐해가 점점 깊어지고 있다. 일부 특수계층이 아니라 직장을 잃은 사람들, 소외된 젊은이들을 포함한 우리 주변으로 깊숙히 들어온 도박의 실상을 머니투데이 엔터산업팀이 짚어봤다.

[해외 원정도박 부추기는 '롤링시스템']

'바카라'(카지노 테이블게임의 일종)를 하기 위해 강원랜드를 찾은 A씨는 솔깃한 얘기를 들었다.

사람으로 미어터지는 국내 카지노에 기웃거리지 말고, 필리핀이나 마카오에서 게임하면 어떠냐는 것이다. 현지에서 항공편과 호텔까지 제공해준다는 얘기였다.

현지의 에이전트에게 1만 달러의 '롤링 칩(Rolling Chip)'을 구매하면 숙식이 제공되고, 2만 달러를 바꾸면 비행기 일반석, 3만 달러를 바꾸면 비즈니스 항공권과 숙식이 제공된다고 했다.

도박을 좋아하는 사람이면 누구나 솔깃하게 만드는 해외 원정도박의 꽃, 이른바 '롤링 시스템'이다.

마카오 시티오브드림즈 카지노 < 사진출처=홈페이지 >

◇여기서는 나도 VIP? '롤링시스템'

'롤링시스템'은 해외 원정 도박이 성행하는 가장 큰 이유 중 하나로 꼽힌다. 에이전트들이 숙소, 비행기 티켓 등을 체계적으로 마련해준다. 현지에 도착하면 리무진이 제공되고, 게임이 끝나면 성매매까지 알선하는 경우도 있다. 베팅액이 적어도 에이전트를 통해 호텔을 싼 가격에 이용할 수 있어 일반 여행객들도 찾는다.

관광객은 현지 에이전트로부터 롤링칩을 구매해 게임을 하고 이길 경우 현금칩으로 받는다. 관광객은 이 칩을 다시 롤링칩으로 바꿔 게임을 진행한다. 이렇게 칩을 바꾸는 과정을 '롤링'이라 부르고 에이전트는 롤링된 금액의 0.5~1.2% 정도를 수수료로 가져간다.

북적이는 인파에 치이는 강원랜드와 달리 해외 원정 도박의 롤링시스템을 이용하면 VIP룸에서 혼자서 게임을 즐길 수 있다. 칩을 걸지 않더라도 게임을 진행시켜 자신이 유리하다고 생각될 때만 게임에 참여하는 '프리 패스'도 가능하다.

또 외환관리법을 피하는 현지 환전서비스(일부 수수료를 때고 한국으로 돈을 송금해주는 서비스)도 원정 도박의 유혹을 떨치기 어렵게 만든다.

하지만 여기에 덫이 있다. 에이전트를 통한 혜택이 상당한 만큼 도박을 중단하고 자리에서 일어서기 어렵다는 점이다. 롤링시스템에서 손쉽게 돈을 빌릴 수도 있어 거액의 도박 빚을 지게 되는 경우도 있다.

업계 관계자는 "보통 10만 달러를 가지고 게임을 하면 플레이어가 따고 잃는 과정에서 칩을 반복적으로 바꾸기 때문에 60만 달러 정도 롤링이 된다"며 "이 때 커미션으로 약 6000 달러가 떨어져 숙식, 비행기 등을 제공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 사진출처=필리핀 리조트월드 홈페에지 >

◇항공사 주말 노선은 '원정도박용?'

해외 원정 도박의 성행에는 항공사도 한 몫 한다. 해외 원정도박지로 각광받는 마카오, 필리핀 항공편은 비행시간이 4시간 이내로 짧다. 금요일에 출국해 월요일 새벽에 귀국하는 '휴가 없는 원정 도박'이 가능한 일정이 항시 대기 중이다.

필리핀항공의 경우 금요일 오후 9시 출국해 월요일 새벽 6시 귀국이 가능해 휴가를 낼 필요가 없다. 일본, 홍콩과 달리 젊은층 선호도가 떨어지는 이 지역에 2박 4일 단기 여행상품이 인기를 누리는 건 상당수가 원정 도박 때문이라는 게 여행사 관계자의 설명이다.

국내 저가 항공사들도 적극적으로 뛰어들고 있다. '금요일 저녁 출국, 월요일 새벽 귀국' 일정의 항공편을 제주항공(마닐라편)과 진에어(클락편) 등에서도 운항한다. 현지 항공사 수준으로 가격이 저렴하고 휴가를 내지 않아도 된다는 장점때문에 직장인들도 쉽게 원정도박 유혹에 빠져든다.

국내 도박 관련 커뮤니티들은 해외 원정도박에 대한 후기가 매일 올라온다. 이들은 주말을 이용해 국내 카지노보다 여유롭게 게임을 할 수 있다며 원정도박 예찬론을 편다. 원정도박을 함께 가는 커플을 모집하는 글도 심심치 않게 찾을 수 있다.

업계 관계자는 "사실상 해외 원정도박에 대해서는 규제가 없다"며 "국내 카지노 규제가 강화될 수록 원정 카지노에 대한 수요가 증가하는 추세"라고 밝혔다